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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은(눅10:25~38)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3-11-16 10: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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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교사는 예수를 시험하려 철저하게 준비했음을 보여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임에도 율법에 대한 기본전제에 자기만의 틀로 적용한 오류가 있다. 율법의 핵심 교훈에 대한 문답에서 그는 정답을 말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옳다고 인정하시며 덧붙이신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충분한 지적 이해와 훈련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교훈하신다. 그런데 이 교훈에 대해 침묵하면서 그 율법 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다시 질문한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모세오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자, 과부, 고아, 병든 자, 내 집에서 일하는 종과 유하는 나그네 등등을 모를지 싶다.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 한다"는 "누가"의 표현은 적확한 것 같다. 이 가식적인 사람에 대한 예수의 인내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 발전한다. 제사장, 레위인 이들은 그 삶을 보고 "피하여 반대편으로 지나갔다." 아마도 사체에 대한 율법을 기억하고 행동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레21:11, 민19:11~13) 그러나 율법은 원수나 형제들의 위기를 도와 줄 것도 명하고 있다.(출23:4~5, 신22:4) 이 율법 교사는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강도 만난 이를 긍휼과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을 자기의 입에 올리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이것이 이 사람의 종교관이고 이 사람의 한계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그와 같이하여라."(눅10:38) 하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사람은 한계가 없다. 주 예수는 율법의 핵심을 이렇게 확대 적용하신다(마5:43~48) 데오빌로여 당신은 영생을 받기 위한 삶(미래)이 아닌 영생을 사는 삶을(현재)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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